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역사/바사 왕조 (문단 편집) ==== 군제 개혁과 러시아와 및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의 전쟁 ====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군제 개혁도 추진하며 우선 전술단위 규모를 줄여 여러 개의 [[중대]]로 구성된 [[대대]]와 이 대대가 모인 [[여단]]을 기본대형으로 편성하여 전술적 유연성을 키웠다. 그리고 조작이 쉽고 가벼운 대포를 제작하여 전쟁에 동원하면서 화력을 강화하였다. 무엇보다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네덜란드 군을 지휘하던 마우리츠 반 나사우가 처음으로 선보인 선형진을 개량하여 보병과 기병, 포병의 3병력의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하도록 부대를 훈련시켰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다시 리보니아를 두고 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전쟁을 시작했다. 먼저 러시아에 대해서는 AD 1613년 [[미하일 1세]] 로마노프에 의해 [[로마노프 왕조]]가 성립되자 차르 지위는 포기한 채 공세를 펼쳐 [[카리알라]] 서부와 [[잉그리아]]를 차지하고 러시아의 [[발트해]] 진출만 차단하였다. 이어서 발트해 동부 연안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 AD 1617년 6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인 리보니아를 공격하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AD 1618년 9월 2년간의 잠시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AD 1621년 8월 공격을 재개하여 1개월 간의 포위전 끝에 리보니아의 주도인 리가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잠시 간의 휴전 끝에 AD 1625년 휴전 기한이 종료되자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리보니아에 대한 대공세를 재개하여 AD 1626년 1월 17일 발호프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리하여 리보니아를 장악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이제 전장을 확대하여 AD 1626년 6월 [[프로이센 공국]]에 상륙하였다. 그의 의도는 [[리가]]에 이어 [[그단스크]](단치히)까지 점령하여 발트 해 무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었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보병, 기병, 포병의 새로운 3병 합동전술을 앞세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자랑하는 후사리아를 상대로 그니에프 전투와 챠르네 전투, 디르샤우 전투 등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프로이센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지원하고 나서면서 AD 1629년 6월의 트슈치아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그리고 결국 AD 1629년 10월 6년 기한의 알트마르크 휴전 조약을 체결하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의 전쟁을 마무리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